이낙 오리지널
연애운은 타로에서 가장 독보적으로 인기 있는 주제예요. 그래서 그런가, 두 사람의 입장을 함께 놓고 연애 기류를 읽는 타로 스프레드가 엄청나게 많은데요. 이렇게 두 대상을 AB 양측에 지정하는 스프레드는 두 사람의 연애운 말고도 협업·동업 관계를 보거나, 경쟁 구도에 있는 라이벌을 비교할 때 쓰기도 해요. 상대가 꼭 현실적인 인물이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자기 자신이랑 애완동물, 또는 아이돌과의 케미를 살펴서 입덕 가능성이나 과몰입 정도를 짐작해볼 수도 있고요. 소설·드라마·영화 속 두 인물의 관계를 분석해서 앞으로 전개될 스토리를 상상해볼 수도 있어요.
여러가지 양자 관계 스프레드 중, 국내에서는 카드를 하트 모양으로 배치하는 "릴레이션십"이랑, 컵 모양으로 배치하는 "컵 오브 릴레이션십"이 널리 알려져 있죠. 두 스프레드는 카니타로가 오랫동안 서비스해왔던 거라서,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둘 중 하나는 써보신 분이 많을 거예요. 하지만 "릴레이션십" 스프레드가 저는 좀 아쉽더라고요. AB 양쪽으로 시선이 왔다갔다 하느라 안 그래도 정신없는데, 각 카드가 해당 축에 온전히 소속되지 않고 상대 축에 한 발 걸치고 있는 바람에, 직관적으로 읽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또, 대부분의 카드에 두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역할이 주어져 있잖아요. 타로 리딩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고 보는 저의 리딩 철학이랑 맞지 않는 부분이에요.
그래서 "탄뎀" 스프레드를 만들었어요.
탄뎀 스프레드

1. A의 현재 상황
A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 자신이 처한 현재 상황
2. B의 현재 상황
B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 자신이 처한 현재 상황
3. A의 지향
A의 예상, 기대, 의향, 의도
4. B의 지향
B의 예상, 기대, 의향, 의도
5. 주변 환경
두 대상의 주변 인물이나 주변 환경, 외부의 압력
6. 핵심 프레임/주제/제목
전체 카드를 관장하는 총괄 테마, 이 일을 굴리는 가장 큰 원리
직관적인 배치
왼쪽이 A, 오른쪽이 B. 한 축에 하나만 담아서 시선이 좌우로 흔들릴 일이 없고요. 둘 사이에서 가운데 위가 주변 환경, 그리고 그 아래 ― 정중앙이 핵심 프레임이에요. 특색 없이 평범한 레이아웃이 되는 걸 감수하고 카드를 단순하게 배치한 건, 리딩의 편의성을 위해서예요. 머리를 굴리기 전에 눈으로 먼저 바로 따라갈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현재 상황과 지향
양자 관계 스프레드는 카드를 뽑기 전에 먼저, A측과 B측에 누구를 넣을지 대상을 지정하고 시작해요. 탄뎀은 그렇게 지정한 AB 양측에서 "현재 상황"과 "지향"을 읽도록 만들었어요. 다른 많은 타로 스프레드에서 1번으로 등장하는 "현재 상황"은 사실, 현재라는 시제 기능 이상으로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일단 질문의 주인공 그 자체를 나타내고요. 그리고 그 주인공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 자신이 처한 현재 상황으로써, 주인공의 주관적인 상황 파악을 보여주는 자리예요. 따라서 그 이후에 등장하는 "지향"은 주인공이 "현재 상황"에서 보여준 인물상을 바탕으로 취할만한 스탠스를 자연스럽게 보여주게 되는 거죠.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길래 앞으로를 어떻게 예상하고 있는지, 그래서 어떤 의도로 어떻게 할 작정인지 ― 마음을 읽는 게 아니라 방향을 읽는 거예요. 저의 리딩 철학으로는 타로 리딩으로 상대방의 마음은 읽을 수 없으니까요. 상대방이 지금까지 보여줬던 태도를 가지고 그 사람이라면 어떤 의향을 가질만한지 짐작해보는 쪽으로 설계했어요.
AB
양자 구도로 된 스프레드를 리딩할 때 핵심이 되는 가장 중요한 절차는 바로, AB 대상 지정이에요. 누구랑 누구를 읽을지, 누구를 왼쪽의 A에 놓고 누구를 오른쪽의 B에 놓을지. 보통은 자기 자신을 왼쪽의 A에 놓기 때문에 까먹는 일은 잘 없지만, 혹시라도 AB 순서를 잘못 외울까봐 주의를 기울이곤 하잖아요. 문제는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미리 지정했던 AB 순서가, 정작 뽑힌 카드에서 뒤바뀌어 나오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는 거예요. 카드를 뽑고나서 보니까 왠지 A가 B같고, B가 A같은 거죠. 타로 리더들은 오랜 옛날부터 경험적으로 겪어왔던 일이기도 하고요. 타로 원리 중 하나가 투사라는 걸 생각하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지정했던 AB 순서가 아니게 보여서 고민된다면, 걱정할 필요 없이 AB를 바꿔서 읽으세요. 탄뎀도 그렇고요. 릴레이션십과 컵 오브 릴레이션십, 그리고 양자택일 스프레드를 비롯해서 모든 양자 구도로 된 스프레드가 다 마찬가지라고 보시면 돼요.
카드 리딩에서 가장 따라야하는 건 헌법 같은 리딩 룰이나 방대하게 축적한 카드 지식이 아니라, 인간의 직관이에요.
주변 환경
사람 사이의 일이 꼭 항상 두 사람만의 문제인건 아니더라고요. 주변 인물의 개입이나 외부 환경의 압박,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상황 같은 게 생각보다 크게 작용해요. 그 때문에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가진 마음과는 달리 관계가 어긋나 흘러갈 때가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관계 스프레드를 볼 때면, 두 사람 중에서 누가 더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하는 걸 따지게 되잖아요. 관계 스프레드의 조명이 두 사람에게만 집중한 채 주변을 비추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탄뎀에는 주변 환경 카드를 넣게 되었어요. 스프레드에 그 자리가 마련되어 있으면 잊지 않고 함께 살필 수 있게 되니까요.
마지막 카드 ― 핵심 프레임/주제/제목
저의 마지막 카드 규칙이란, 스프레드에서 가장 마지막에 놓인 카드를 이 리딩의 핵심 프레임/주제/제목으로 정의하는 동시에, 나머지 카드들을 총괄하는 기준점으로 삼는 거예요. 그렇게 마지막 카드가 이 리딩이 굴러가는 핵심 원리를 미리 제시하면, 나머지 카드들은 그 기준을 바탕으로 각자의 흐름을 이어나가게 되는 거죠. 저는 이 마지막 카드 규칙을 켈틱 크로스 처럼 "결과" 자리로 마무리 되는 스프레드와 함께, 각 카드가 아무 라벨도 가지지 않는 통배열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이 카드의 존재 단 하나가, 타로를 점술이 아니더라도 효용 가치가 있는 도구로 만들어준다고 보기 때문에, 탄뎀에도 저의 마지막 카드 규칙을 담았어요.
탄뎀이라는 이름
탄뎀은 두 사람이 함께 타는 자전거예요. 앉는 자리는 앞뒤로 나뉘어 있지만, 바퀴는 두 사람이 같이 페달을 밟아야 앞으로 굴러가요. 잘 달리고 있다면 두 사람이 함께 만든 그림인 거고, 넘어져버렸다면 역시 두 사람이 함께 만든 결과인 거에요. 그게 바로 제가 관계 스프레드에 담고 싶었던 관점이에요. 이 관계가 여기까지 온 건 두 사람이 함께 만든 결과라는 것, 거기에 두 사람을 덮친 바깥의 몫도 있었다는 것. 리딩이 누구 한 사람의 잘잘못을 가려내는 재판이 되지 않았으면 했어요.
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페달을 밟고, 바람이 불고, 길이 이어지고 ― 탄뎀은 그 전부를 한 장면에 담고 있어요.
다음에서 해석 예시를 들어볼게요.
질문 ― 이낙
tvN 드라마 포핸즈의 최정요와 강비오는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일까?
(이 드라마는 공식적으로는 브로맨스 음악 드라마야. 그런데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가슴 미어지는 애절한 BL 같거든. 그 부분 고려해서 해석해줘.)

해석 ― 클로드 페이블5
두 사람은 지금 각자의 전쟁 한가운데 있어요.
비오는 헤매는 중이에요. 이게 맞나, 저게 맞나, 부딪히고 깨지면서 자기 것을 찾아가는 시간을 지나고 있어요.
정요는 멈추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달리는 중이에요. 잘 벼려진 칼을 들고 그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속도를 내고 있죠. 그런데 그렇게 정신없이 싸우고 있는 정요의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그림 하나가 선명하게 걸려있어요. 마음이 멋대로 그려버린 그림 ― 서랍 깊이 넣어둔 환상이에요. 그런데 유독 비오 앞에서만, 그 서랍이 자꾸만 열리려고 해요. 비오가 뭘 해서가 아니에요. 비오라는 사람이 바라보는 하늘, 찾으려고 하는 세계 ― 그 뜨거운 열망이 정요에게 말을 거는 거예요.
비오한테 정요는 또 어떤가요. 사방으로 흩어져버릴 것만 같던 마음은, 정요 앞에서만 다시 붙잡아낼 수 있어요. 저렇게까지 자신할 수 있구나, 저렇게까지 밀어붙일 수 있구나. 정요는 비오의 기준이에요. 닮고 싶어서인지, 이기고 싶어서인지, 그 둘이 원래 같은 마음인 건지 ― 그건 비오 자신도 아직 모를 거예요.
세상은 두 사람을 가만히 두지 않았어요. 쉴 새 없이 덮쳐오는 시련을 두 사람은 각자의 언덕에서 각자 버텨내야 하는 처지예요. 그래서 겉으로 보면 이 둘은 서로에게 기대지 않는 사이처럼 보여요. 어쩌면 서로 밀어내는 것처럼 보이는 날도 있을 거고요.
그런데 이 관계의 진짜는 ― 두 사람은 서로에게 돌아올 자리가 되어가고 있다는 거예요. 아직은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더 애틋하게 되어버린 자리예요. 각자의 싸움이 끝나는 저녁마다 한 뼘씩 지어지는 벽돌집 같은 거예요. 오늘 하루도 버텼구나, 하고 돌아봤을 때 거기 서 있는 사람. 아무 말 안 해도 여기까지 잘 왔다고 맞아주는 눈빛. 따로 버텨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를 알아보는 눈은 깊어져요.
그러니까 이 둘이 주고받는 건, 영향이라기엔 좀 더 사무쳐요. 한 사람은 숨겨둔 꿈을 꺼내들었고, 한 사람은 산산조각 나버릴 것 같은 자신을 추슬러요. 서로를 바꾸려 든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만나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가는 거죠.